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위대한 탕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어도 로마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그녀의 미모와 야심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녀가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 한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의 황제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는 성적인 면에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 을 만큼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운명은 쾌락을 향유한 대가 로 무너지고 말았다. 위대한 탕녀. 파렴치한 여인. 음탕한 여인. 운명의 신이 내린 괴물 등등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기록은 증오심을 갖은 로마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었다.

그들은 왜 그토록 클레오파트라를 비난했을까?
그것은 로마의 황제 안토니우스가 그녀에게 빠져 로마의 자존심을 버리고 이집트 관습과 복장을 따른 점과 로마가 지배하던 황금알을 낳는 식민 지를 타국 여인의 침대 속으로 고스란히 바쳤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화려하게 치장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는 장면을 연상해보면 배는 황금빛이요 바람을 받아 부풀어 오른 자주색의 돛과 갑판의 중앙에 금실로 수놓은 장막이 좌우로 열려 있었고 그 아래 옥좌에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클레오파트라가 요염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노예들은 은으로 만든 노를 저으며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배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그런 경이로움에 정신이 나간 안토 니우스는 그녀에게 넋을 잃었다. 이렇듯 클레오파트라는 완벽한 연출을 하여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했으며 안토니우스를 만난 그녀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혹시 권태를 느낄까봐 새로운 쾌락을 연구하여 사랑을 잡는데 성공했다.
더욱이 안토니우스에겐 옥타비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클레오파트라보다 백배는 아름 답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버리고 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했을까?
그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뛰어난 화술로 안토니우스의 넋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로마 여성의 미덕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정숙한 옥타비아가 먼 동방의 여왕 의 적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문헌을 통해 그 같은 글들을 쏟아 부었다. 옥타비아 여왕은 클레오파트라의 노예로 전락한 남편을 로마의 수치로 생각하며 두 남녀를 국가의 명예를 더럽힌 탕아와 국제적인 창녀로 매도한 후 남편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벌여 승리했고 벼랑 끝에 몰린 안토니우스는 자결하였다.
결국 12년간 클레오파트라에게 불같은 사랑 을 한 안토니우스는 사랑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지불해야 했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한 뒤 그녀는 바로 최후를 맞았다. 문헌에는 그녀가 독사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하면서 16세기 이후 화가들은 독사가 벌거벗은 여왕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해 화폭에 담기를 즐겼다.

즉,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풍겨 바로크 시대는 이처럼 죽음과 성을 같이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표적인 예가 클레오파트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이집트를 위한 그녀의 몸부림이었으며 유혹에 빠진 황제의 몰락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여 당시의 이집트를 강국으로 만든 여인에게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된다.
이집트의 국민들에게는 막강한 부를 축척시킨 영웅적인 여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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