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6일 금요일
[다시 쓰는 킨제이 性보고서] 남녀 차이를 조율해가며 최선을 찾는 놀이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가 살았던 아름다운 섬, 플로리다 키웨스트의 또 다른 볼거리는 엉뚱하게도 공동묘지 묘비에 새겨진 짧은 글귀들이다.
그중 단연 으뜸은 어느 여인의 묘비에 적힌 “I told you I was sick(내가 아프다고 말했잖아요)”란 남편에 대한 원망 섞인 문구다.
성 클리닉에는 이처럼 대화 단절과 성 관계의 갈등을 털어놓는 환자들이 많다. 남자들은 아내가 무엇을 미흡해하는지 생각지도 않고 남들 얘기에 크기나 섹스 시간에만 급급해한다.
자신의 성 문제를 말하기 창피해 혼자 고민하다가 정력제에 집착하거나 멀쩡한 성기를 헛돈 들여가며 망쳐놓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삽입 성교가 아프기만 해서 성행위를 피할 때도 있다. 이를 말하자니 자신이 목석같은 여자는 아닌지, 행여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 두려워한다. 또 오르가슴을 느끼기 힘들고, 이보다 저게 더 좋다고 말하려 해도 너무 밝히는 여자로 보일까 주저한다. 게다가 예전보다 시들해진 남편을 두고 외도를 의심하다가 애꿎은 남편을 천하에 몹쓸 인간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성 클리닉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 일단 부부가 함께 나타나거나, 그들의 의사 소통이 원활하면 치료는 한결 수월해진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단기간의 섹스 파트너는 신체적 매력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성 관계의 예측인자는 남녀 모두 ‘상대와 성 문제를 상의하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여자의 신체적 매력에만 집착하고 대화엔 무관심할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로 남성들도 장기적인 성 관계는 상대와의 대화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남녀 모두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무엇일까. 이는 ‘포르노나 잡지에서 본 대로 무작정 따라하는 상대’로 여기는 성 관계다. 즉 성 행위란 개인차를 조율해가며 최선을 찾는 놀이이며, 천편일률적인 왕도는 없다는 뜻이다. 서로의 공통 분모를 탐구하는 재미를 안다면, 부부의 성행위는 자연스레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성 관계의 불협화음을 다루는 ‘관능 초점’ 훈련의 시작도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합의하에 자신이 원하는 쾌감과 상대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필자는 남편이 수술 후유증으로 갑자기 발기부전에 빠진 부부를 만난 적 있다. 이 부부는 진단을 받고 진료실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했다. 하지만 치료자의 입장에서 이런 부부라면 그들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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